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코 히로시게 (문단 편집) == 생애 == [[1962년]] [[11월 9일]] 오사카시 [[텐노지구]]에서 태어나 본가가 있는 와카야마현 [[신구시]]에서 성장했다. 많은 일본의 중진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일본/정치#s-8.1|지역구를 물려받은 세습 정치인]]으로, 조부인 세코 고이치(世耕弘一)가 중의원을 8회 역임(1932~1965)하였고 백부 세코 마사타카(世耕政隆)가 중의원 1회(1967~1969), 참의원 5회(1971~1998)를 역임하였다. 세코 히로시게는 백부의 사망 이후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지역구를 이어받았다.[* 명색이 자유선거인 일본의 선거 결과를 세습이라고 지칭하는 이유는 비교적 주목을 덜 받는 지방 지역구는 밀실에서 자민당 공천을 이어받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어드밴티지를 누리며 특히나 이들이 총리 등의 요직에 앉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본인이 3대인 [[아베 신조]].] 한편으로는 사학재벌이기도 한데, 조부 세코 고이치가 [[긴키대학]]의 설립자이며 백부와 부친에 이어 세코 히로시게가 현재 4대 긴키대학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배우자는 2013년 결혼한 전직 참의원 하야시 구미코(林久美子, 지역구는 [[시가현]])이다. 특이한 것은 하야시가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일본 1998년)|민주당]] 소속인 것으로, 드물기는 하지만 여야간 성향 차이가 희석된 지금의 일본 정계에서는 그렇게까지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하야시는 2016년 낙선 후 정계에서는 떠나 있다. 와세다대학교에서 정치학과 학사로 졸업하고, 석사는 미국 보스턴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 학부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본격적으로 정치인 생활에 뛰어든 때는 1998년으로, 큰아버지의 참의원 재임중 사망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자민당 참의원으로 당선된다. 이후 2003년에 총무대신 정무관을 시작으로 참의원 총무위원장을 지냈다. 자민당 내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2005년 총선(중의원 선거)를 전후로 당 홍보본부장을 맡으면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선보인 이른바 '극장형 정치'가 바로 세코의 작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코는 2009년 자민당의 총선 패배 뒤엔 인터넷 댓글부대 '자민당 넷 서포터즈 클럽'(J-NSC) 창설을 주도, 온라인 공간의 우군 확보에 공을 들였다. '[[괴벨스]]'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같은 경력 때문이다. 물론 자신은 그 별명은 싫어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인연은 2006년에 시작되며, 이때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등을 지낸다. 2012년에 아베 2기 내각에서 [[내각관방]] 부장관을 거쳐 2016년 8월에 경제산업대신으로 임명되었다. 세코 본인은 경제나 무역 전문가는 아니나, 내각책임제 정권에서 장관직 돌려막기는 흔한 일이다. 2019년 9월에 개각으로 물러났다.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2019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73.8%의 압도적 득표율로 5선에 성공했다. [[https://www.nhk.or.jp/senkyo/database/sangiin/2019/30/skh43421.html|#]]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